뛰어라, 점프!
너무 착한 아이들이 있다. 말 없이 자기 할 일을 다 하고, 공부 잘하며 얌전한 아이들. 우리의 주인공 수리도 그런 아이다. 수리는 아이들이 필요할 때마다 떼를 쓰면 부모님들이 얼마나 피곤할까 걱정하는 아이다. 부모님 생각 먼저 하던 착한 아이인 수리는 언제부터인가 꼭 필요한 말 외에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말이 없는 아이로 유명해졌다. 범생이 수리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한 마디 툭 던진다. 집을 잃어버리거나 주인에게 버림받은 개들이 보호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보고 난 뒤였다. 개를 키우고 싶다는 수리의 말을 부모님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그러나 수리는 며칠 뒤 다시 개를 사 달라고 말한다. 밥 주고 물 주고 똥 치우는 것을 자기가 하는 것은 물론 공부도 더 열심히 하겠다고 설득한다. 아무거나 사 달라고 조르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부모님은 마침내 수리가 개를 사도록 한다. 그렇게 해서 선택한 개는 유기견 보호소 구석진 자리에 있던 개다. 숨은 그림 찾기보다 더 찾기 어려운 자리에 숨어 있어 보호소 아저씨마저 존재를 잊고 있던 개다. 세상의 일이 자기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 그저 얌전히 모은 앞발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엎드려 있던 개. 수리는 그 개에게 점프라는 이름을 붙여 준다. 점프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만 쓸 수 있는 밥그릇과 물그릇을 가지게 되었고, 혼자만 잘 수 있는 근사한 집도 생겼다. 집 안에는 깨끗하고 부드러운 이불이 깔려 있었다. 딱딱한 시멘트 바닥이 아니라 푹신푹신한 잔디 위에서 마음껏 뛰어놀 수도 있었다. 그러나 수리는 자기 할 일을 다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너무 바빴다. 점프랑 놀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렇지만 보호소에서 캥 소리 한 번 내지 못하던 수리가 엄청나게 짖어대거나, 이웃집 꽃밭을 다 망가뜨리거나, 목사리가 풀리자 울타리를 뛰어넘어 달리거나 하는 점프를 보며 수리도 바뀐다. 점프와 함께 뛰면서 땀이 흐를수록 답답했던 마음속에 작은 구멍이 뚫리는 기분을 느낀다. 뛰면 뛸수록 그 작은 구멍이 커지면서 가슴속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을 경험한다. 너무 뛰어서 힘이 빠진 수리는 가만히 앉아서 숨을 고르기가 힘들었다. 수리는 터질 듯이 뛰는 심장을 손으로 누르며 헉헉거렸다. 그때 점프가 다가와 수리의 얼굴을 핥기 시작했다. 점프는 흠뻑 젖은 수리의 머리카락도 핥았다. 점프의 혀가 닿을 때마다 축축한 촉감과 헉헉거리는 점프의 숨소리가 그대로 수리에게 전해 왔다. 수리는 간지러움을 참지 못하고 뒹굴며 웃었다. 그럴수록 점프는 더욱 신 나게 수리의 얼굴을 핥았다. 실컷 웃고 난 수리는 점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손을 들어 점프의 털을 쓰다듬었다. 부드러웠다. (59쪽) 수리는 점프를 꼭 끌어안는다. 오랫동안 점프의 심장이 뛰는 걸 몸으로 느낀다. 이제 수리는 말을 하지 않아도 안다는 게 무엇인지 처음으로 이해한다. 말하지 않고 서로를 이해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하여 너무 사나워서 도저히 키울 수 없다며 점프를 다시 보호소로 돌려보내려는 부모님에게 “점프는 내 친구예요. 돌려보내기 싫어요.” 하고 당당히 소리친다. 말이 없는 아이로 유명한 수리가 드디어 말문을 터뜨린 것이다. 이것은 점프와 함께하여 비로소 일어난 결과이다. 보호소 구석진 자리에 있던 개를 일으켜 세운 것은 실상 점프를 일으켜 세운 것을 뿐더러 수리 자신을 일으켜 세운 것이다. 그러니 그 우정은 깊고 오래가지 않을 수 없으리라.
어린이의 마음속 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 하신하 신작!
말없이 서로의 마음을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이 없는 아이 수리와 말 못하는 개 점프의 마음 열기,
그리고 마음을 알아주는 친구 되기.
어느 날 밤, 수리의 개 점프가 유난히 낑낑거렸어요. 마치 놀아 달라고 졸라 대는 것처럼요. 수리가 엉킨 줄을 풀려고 점프 목사리의 고리를 풀자마자 점프는 나는 듯이 달려 나갔죠.우리를 부수고 서커스단에서 도망치는 코끼리처럼, 사냥꾼을 피해 초원을 달리는 사자처럼,수족관에서 바다로 뛰어드는 돌고래처럼.그 뒤로 밤마다 수리와 점프는…….